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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차 배터리, 반도체, 풍력발전기, 전력망은 서로 다른 제품처럼 보이지만 리튬·니켈·코발트·흑연·희토류·구리 같은 핵심광물을 함께 필요로 합니다. 핵심광물은 수급 위기나 가격 급등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고, 산업에 미치는 충격도 큰 재료입니다. 재료가 제때 들어오지 않으면 공장 가동, 제품 가격, 납기가 함께 흔들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새 광산 개발이 중요합니다. 다만 수입 의존도가 높은 나라가 내일의 공급 충격을 견디는 방법은 광산 하나를 찾는 일로 끝나지 않습니다. 탐사·인허가·건설·정제까지 시간이 걸리고, 광석을 캐는 곳과 가공하는 곳도 다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재자원화는 국내의 두 번째 원료 길을 만들고, 비축은 위기 때 시간을 사며, 다변화는 한 곳의 충격이 생산 중단으로 번지는 위험을 낮춥니다.
AI 투자 확대가 무엇을 바꾸는지 살펴본 글에서 거대한 투자는 돈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력·장비·소재 같은 기반의 문제라고 설명했습니다. 이번에는 그 기반의 가장 아래쪽, 즉 재료 안전망을 살펴보겠습니다.
새 광산이 필요해도, 그것만으로는 늦을 수 있다
새 광산과 정제 시설 투자는 장기 공급 능력을 넓히는 중요한 방법입니다. 하지만 위기가 내일 닥쳤을 때 바로 꺼내 쓸 물건과는 성격이 다릅니다. 학교 급식에 비유하면 농장 계약은 앞으로 식재료를 받을 약속이고, 냉장고 속 식재료는 배송이 멈춘 며칠을 버티게 하는 비축분입니다. 둘은 경쟁하지 않고 서로 다른 시간을 담당합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새 광산과 정제 능력 투자가 필요하다고 보면서도, 특정 나라에 정제 능력이 몰린 구조를 위험으로 지적합니다. 구리·리튬·니켈·코발트·흑연·희토류의 경우 2024년 상위 3개 정제국의 평균 점유율은 86%였습니다. 한 곳의 수출 통제·사고·물류 차질이 여러 산업에 번질 수 있다는 뜻입니다. IEA의 핵심광물 분석은 다변화를 에너지 안보의 핵심 과제로 봅니다.

재자원화는 ‘쓰레기 처리’가 아니라 도시 안의 두 번째 광산
재자원화는 쓰고 난 배터리, 전자제품, 촉매에서 유용한 금속을 회수해 다시 산업 원료로 쓰는 일입니다. 땅속 광산을 새로 파지 않아도 이미 국내에 들어온 제품에서 원료를 얻는다는 점에서 ‘도시 광산’에 가깝습니다.
산업통상부는 2026년 1월 핵심광물 재자원화를 단순 폐기물 처리가 아니라 ‘핵심광물 제조’ 산업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산업 분류·통계·시설장비 지원·규제 개선을 추진하겠다는 내용입니다. 다만 국내 관련 기업은 200여 개 수준이고 폐배터리·폐촉매 같은 일부 품목에 치우쳐 있다고 밝혔습니다. 아직 완성된 공급망이 아니라 키워야 할 산업이라는 뜻입니다. 산업통상부 원문에서 정책의 출발점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재자원화가 광산을 완전히 대신하지는 못합니다. IEA는 재자원화를 수입국의 중요한 2차 공급원으로 보지만, 새 광산 투자를 없애지는 못한다고 설명합니다. 특히 지금은 수명이 다한 전기차 배터리가 아직 충분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수거·선별·정제·품질 인증이 함께 갖춰져야 회수한 금속도 실제 제품 원료가 됩니다.

IEA는 정책이 제대로 확대될 경우 2050년까지 재자원화가 새 광산 개발 필요를 구리·코발트는 40%, 리튬·니켈은 약 25% 낮출 수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이는 전 세계가 국가 기후 공약을 이행하는 장기 시나리오이지, 내일 한국의 수입이 같은 비율로 줄어든다는 뜻은 아닙니다. 전제와 한계는 IEA 「Recycling of Critical Minerals」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365일 비축은 ‘모든 광물을 1년치 쌓아 둔다’는 뜻이 아니다
비축은 수입 차질 자체를 없애지는 못하지만, 기업과 정부가 대체 공급처를 찾고 생산 계획을 조정할 시간을 벌어 줍니다. 자동차의 안전벨트처럼 사고를 없애지는 못해도 피해를 줄이는 장치에 가깝습니다.
여기서 숫자를 정확히 읽어야 합니다. 산업통상부는 2026년 8월 국내 생산이 어려운 품목을 대상으로 비축 품목을 24종에서 29종으로, 최대 비축일을 180일에서 365일로 확대하겠다고 제시했습니다. 모든 핵심광물을 현재 1년치 보유한다는 뜻이 아니라, 지정된 품목의 최대 기준을 높이겠다는 계획입니다. 2030년까지 10대 핵심광물 재자원화율을 20%로 늘리고, 새만금 비축기지를 2028년 가동하겠다는 계획도 함께 제시했습니다. 산업통상부 7대 SEED 보고회 원문은 재자원화·비축·다변화를 한 묶음으로 설명합니다.
이 방향은 이전 전략에서 더 강화된 흐름입니다. IEA 정책 추적기는 한국의 2023년 전략을 소개하면서 당시 54일 수준에서 100일 비축 목표, 조기경보·공급망 지도, 2030년 재자원화율 20% 목표를 기록했습니다. 따라서 365일은 이미 달성된 실적이 아니라 후속 확대 계획으로 읽어야 합니다. IEA의 한국 정책 요약은 이 구분을 확인하게 해 줍니다.

광산과 재활용 중 하나를 고르는 문제가 아니다
비축만으로는 보유량이 줄고 관리비용이 듭니다. 재자원화만으로는 회수할 폐제품과 정제 역량이 충분해야 합니다. 그래서 공급망은 한 겹짜리 방패가 아니라 여러 겹의 그물에 가깝습니다. 해외 광산과 수입선 다변화는 들어오는 길을 늘리고, 비축은 시간을 벌며, 재자원화는 국내의 두 번째 원료 길을 만들고, 정제·소재 기술은 원료가 실제 제품으로 이어지게 합니다.
AI가 메모리 가격을 흔드는 구조를 설명한 글과 연결해 보면, 반도체·배터리·AI 서버처럼 수요가 늘어나는 산업에서는 완제품 가격만 보아서는 부족합니다. 어떤 소재가 어디에서 정제되고, 문제가 생겼을 때 얼마나 버틸 수 있는지까지 함께 봐야 합니다.

결국 좋은 공급망 정책은 어느 나라 광산을 확보했는가 한 줄로 평가하기 어렵습니다. 새 광산과 해외 협력, 재자원화, 비축, 정제 기술, 수입선 다변화가 위기 때 실제로 연결되어 작동하는가를 묻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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