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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차나 에너지저장장치(ESS)에서 나온 배터리를 두고 ‘폐기물이 아니라 자원’이라고 말하면, 마치 아무 배터나 다시 쓸 수 있다는 뜻처럼 들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핵심은 반대입니다. 사용후 배터리를 진짜 자원으로 만들려면, 더 꼼꼼한 회수·안전·정보 관리가 필요합니다.
산업통상부와 기후에너지환경부는 2026년 8월 7일 사용후 배터리를 리튬·니켈·코발트 같은 핵심광물을 품은 전략자원으로 보고, 거래·이력 관리 플랫폼과 재생원료 인증 연계, 운반·보관 규정 정비를 함께 추진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두 부처의 공식 협력 발표를 보면, 이 정책의 출발점은 ‘버려진 배터리를 많이 모으자’가 아니라 누가 어떤 상태의 배터리를 회수해 어디로 보냈는지 알 수 있게 하자는 데 있습니다.
배터리의 ‘마지막’은 세 갈래로 나뉩니다
배터리는 자동차에서 떼어냈다고 해서 모두 같은 길로 가지 않습니다. 남아 있는 성능과 안전 상태에 따라 길이 달라집니다.
- 재제조는 성능을 보완해 비슷한 용도로 다시 쓰는 일입니다.
- 재사용은 전기차에서 나온 배터리를 ESS나 농기계처럼 다른 제품에 쓰는 일입니다.
- 재활용은 배터리를 분해해 리튬·니켈·코발트 같은 금속 원료를 다시 꺼내는 일입니다.
환경부는 이 과정을 배터리의 전 생애주기라고 설명합니다. 사용 후 배터리는 성능평가를 거쳐 재제조·재사용·재활용으로 갈리고, 재활용 단계에서는 파·분쇄 뒤에 생긴 블랙매스 같은 중간 원료에서 금속을 회수합니다. 환경부의 순환이용 활성화 방안은 이 세 길을 같은 것으로 섞어 부르면 안 되는 이유를 보여 줍니다.
스마트폰 배터리로 비유해 보겠습니다. 휴대전화를 바꿨다고 낡은 배터리를 바로 새 휴대전화에 넣을 수는 없습니다. 먼저 남은 성능과 부풀음·손상 여부를 확인해야 하고, 안전하다면 다른 용도로 쓰거나, 그렇지 않다면 금속 원료로 되돌려야 합니다. 사용후 배터리도 똑같습니다. ‘다시 쓴다’는 말 앞에는 평가와 안전 확인이 먼저 와야 합니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복잡한 과정을 거칠까요? 답은 배터리 안에 든 금속과 정보에 있습니다.
재활용은 광산을 완전히 대체하지 않지만, 공급망의 두 번째 출발점이 됩니다
전기차 배터리에는 리튬·니켈·코발트처럼 공급이 특정 지역과 기업에 집중될 수 있는 광물이 들어갑니다. 새 광산을 개발하는 일은 여전히 필요합니다. 다만 광산 개발은 시간도 오래 걸리고, 정제와 운송까지 포함하면 공급이 바로 늘지 않습니다. 이미 국내에 들어와 사용된 배터리에서 원료를 회수하는 일은 그래서 공급망의 두 번째 출발점이 될 수 있습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핵심광물 재활용이 청정에너지 전환에서 공급 안정성과 지속가능성에 중요하다고 설명합니다. IEA의 핵심광물 재활용 보고서는 재활용 설비와 회수 체계가 충분히 확대된다는 조건에서, 배터리 재활용이 2050년 리튬·니켈·코발트 수요의 20~30%를 충당할 잠재력이 있다고 봤습니다. 이는 지금 당장 수요의 20~30%를 채운다는 뜻이 아니라, 회수·처리 체계를 만들면 장기적으로 공급망 부담을 줄일 수 있다는 시나리오입니다.
이 관점은 이미 다룬 핵심광물 공급망 글과 이어집니다. 핵심광물은 새 광산 하나만으로 관리하기보다 비축·재자원화·수입선 다변화를 함께 봐야 합니다. 사용후 배터리는 그중에서 ‘도시 안에 이미 들어와 있는 광물’을 다시 찾는 방식입니다. 또한 AI 데이터센터와 광섬유 공급망을 다룬 글처럼, 산업이 커질수록 새 부품을 만드는 능력과 이미 쓰인 자원을 안전하게 되돌리는 능력을 함께 살펴야 합니다.

하지만 ‘광물이 있으니 회수만 하면 된다’는 생각도 부족합니다. 배터리는 화재 위험과 품질 차이가 있기 때문에, 누가 보관하고 운반하며 어떤 기준으로 상태를 판정하는지가 같이 중요합니다.
이력 정보는 배터리의 택배 송장과 같습니다
사용후 배터리의 이력 관리란 제조부터 운행, 회수, 재사용·재활용까지의 정보를 이어 보는 체계입니다. 택배 상자에 송장이 없으면 어디서 왔는지, 무엇이 들어 있는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알기 어렵습니다. 배터리도 이력 정보가 없으면 성능·안전·원료 출처를 믿고 거래하기 어렵습니다.
산업통상부와 기후에너지환경부가 추진하는 거래·이력 관리 플랫폼은 바로 이 문제를 해결하려는 장치입니다. 두 부처는 기존에 따로 추진하던 유통·재사용 정보와 전과정평가·재활용 정보를 연계해 통합 서비스를 만들겠다고 밝혔습니다. 또한 재생원료의 생산 인증과 사용·함유율 인증도 연결할 계획입니다. 2026년 8월의 공동 발표 원문은 이 시스템이 아직 구축·정비 과정이라는 점도 분명히 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구분이 있습니다. 인증서는 ‘친환경’이라는 스티커가 아닙니다. 원료가 어디서 왔는지, 어느 공정을 거쳤는지, 품질을 어떻게 확인했는지를 거래 상대방과 규제기관이 확인할 수 있게 하는 기록이어야 합니다. OECD가 설명하는 생산자책임제도(EPR)도 비슷한 원리입니다. 생산자가 소비 후 단계까지 책임을 넓히면 회수·분류·재활용의 재원을 만들고, 제품과 폐기물 처리에 관한 정보도 쌓이게 됩니다. OECD의 EPR 설명을 보면, 순환경제는 물건을 다시 쓰는 기술만이 아니라 정보와 비용의 책임을 설계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안전 기준이 없으면 ‘자원’은 위험한 보관물이 될 수 있습니다
사용후 배터리는 남은 전기가 있고, 손상 상태에 따라 화재 위험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자원으로 활용한다는 이유로 안전 규정을 느슨하게 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재사용·재활용이 늘어날수록 성능 평가, 운반, 보관, 유통 단계의 기준이 더 중요해집니다.
산업통상부는 2026년 5월 내각이 의결한 ‘사용후 배터리의 관리 및 산업육성에 관한 법률’ 제정안에 성능 평가와 안전 검사, 전 생애주기 이력·거래 체계, 재생원료 함량 목표와 인증, 산업 지원 체계를 담았다고 발표했습니다. 이 법은 공포 뒤 1년 후 시행될 예정이므로, 지금은 세부 시행 규칙·예산·현장 기준을 준비하는 단계입니다. 산업통상부 영문 공식 보도자료는 ‘폐기물이 아닌 전략자원’이라는 표현과 ‘안전 프레임워크’를 한 문서 안에서 함께 제시합니다.

따라서 앞으로 뉴스에서 ‘배터리 재활용 시장이 커진다’는 말을 볼 때에는 세 가지를 따로 확인하는 편이 좋습니다. 회수할 배터리가 실제로 얼마나 있는지, 재사용·재활용으로 가기 전 안전과 성능을 어떻게 판정하는지, 재생원료의 출처와 품질을 누가 확인하는지입니다. 셋 중 하나라도 빠지면 공급망이라는 말은 구호에 머물 수 있습니다.
한 장으로 정리하면
배터리 순환이용은 단순히 버려진 물건을 줄이는 일이 아닙니다. 회수된 배터리를 안전하게 분류하고, 남은 성능에 맞는 길을 정하고, 필요한 경우 금속 원료로 되돌린 뒤, 그 과정을 신뢰할 수 있는 정보로 남기는 일입니다. 아래 표는 각 단계에서 무엇을 확인해야 하는지 정리한 것입니다.

독자는 다음 네 가지를 확인하면 됩니다
첫째, 정책 발표가 현재 시행 중인 제도인지 도입·정비 중인 계획인지 구분합니다. 사용후 배터리법과 통합 플랫폼은 방향과 준비 과정을 제시한 것이며, 세부 기준이 모두 끝난 상태라고 단정하면 안 됩니다.
둘째, 재사용과 재활용을 같은 말처럼 쓰지 않는지 봅니다. 성능이 남은 배터리를 다른 용도로 쓰는 것과, 분해해 금속을 회수하는 것은 필요한 안전 기준과 경제성이 다릅니다.
셋째, 재생원료의 숫자만 보지 말고 이력 정보와 품질 인증을 함께 봅니다. 출처를 확인할 수 있어야 기업도 원료를 믿고 사용하고, 공공도 정책 효과를 측정할 수 있습니다.
넷째, 공급망 강화가 환경성과 안전성을 자동으로 보장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회수·보관·운반과 재활용 공정의 안전 기준이 실제로 마련되고 지켜지는지를 계속 확인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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